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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ITIOUS 오천] 끝없이 발전하고자 하는 Mbitious의 재간둥이 | PLUS+INTERVIEW

2023.07.25

 

 

Mbitious의 멤버로 거듭나기 위해 경쟁했던 〈Be Mbitious〉를 거쳐 〈스트릿 맨 파이터〉까지. 춤을 향한 열정으로 뭉쳐 이제는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Mbitious가 플러스 매거진과 만났습니다. 그 네 번째 주인공은 Mbitious의 맏형이자 리더인 오천입니다. 기상천외한 프리스타일 동작을 무기로 매번 물 흐르듯 자신만의 무대를 꾸며나가는 모습만큼이나, 오천만의 재치 있는 답변이 돋보인 인터뷰였습니다.

 

 

 

 

어떻게 댄서를 꿈꾸게 되었나요?


처음 춤에 매료된 순간은 중학교 때였어요. 그때 우연히 TV 프로그램에서 많은 연예인이 나와 다 같이 춤추는 장면을 보고, 조금씩 따라 추면서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런 식으로 하다가, 한 공연 팀에 들어가게 되면서 전문적으로 댄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재밌어서 하다 보니 지금까지 하게 되었네요.  
 


광주 스트릿댄스 팀 '빛고을댄서스'의 결성 멤버이기도 한데요, 창단에 얽힌 비화가 있을까요?


‘빛고을’은 광주의 순우리말 표현이에요. 원래 빛고을댄서스 이전에 ‘빛고을왁커스’라는 팀이 있었어요. 광주의 왁킹 댄서들이 주축으로 모여 활동하는 팀이었는데, 이제 왁킹 말고도 다른 장르를 구사하는 친구들이 점점 모이기 시작하면서 ‘빛고을댄서스’로 이름을 바꾸게 됐죠. 팀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저희가 광주에서 댄서를 시작할 때는 고생을 정말 많이 하며 지냈거든요. 그래서 다음 세대 친구들은 저희 같은 시행착오를 덜 겪고 오롯이 춤에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빛고을댄서스는 광주 댄스 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팀이기도 하죠. 창단 이듬해부터 매해 '배틀라인업' 대회를 열고, 많은 댄서 지망생에게 수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빛고을댄서스에게 오천은 어떤 멤버인지, 오천에게 빛고을댄서스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표현이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빛고을댄서스에게 ‘바지 사장’ 같은 멤버가 아닐까요. (웃음) 뭔가 중요한 위치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아도 정작 중요한 일들은 다른 멤버들이 다 해주거든요. 뭐랄까, 저에게 빛고을댄서스는 ‘역사’이자 ‘뿌리’에요. ‘오천’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지기 훨씬 전부터 늘 옆에서 저를 같이 봐왔던 친구들이거든요.



오천은 2014년부터 여러 스트릿 대회를 휩쓸며 화려한 수상 경력을 남겼습니다. 본인만의 배틀에서 이기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또한 배틀 도중에 이겼다고 확신이 드는 순간이 있을까요?


배틀을 잘하는 방법이라… 그건 아직도 찾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배틀은 공식처럼 패턴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매번 다른 상황에 맞춰 적응을 최대한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들쑥날쑥한 게임이니까요. 그리고 배틀 도중 ‘이겼다’고 느낀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겠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진 적이 너무 많습니다. (웃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생각은 잘 안 하려고 해요. 이겼다고 생각하고 지면 데미지가 두 배로 오거든요.



그렇다면 ‘배틀 문화’가 가진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즉흥성’이요. 한 댄서와 다른 댄서, 그 둘이 붙었을 때만 나오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그리고 그 매치업에서도 디제이가 어떤 노래를 틀지 모르고요. 순간순간 만들어지는 모든 상황이 바로 배틀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즉흥성이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천을 대표하는 단어는 ‘프리스타일’이지만, 자신만의 시그니처 동작이 있을 것 같아요.


무대 위 동작은 대부분 즉흥으로 하다 보니 딱히 정해놓고 하는 편은 아니지만, 처음 입장할 때는 일단 천천히 걸으면서 무대를 돌곤 해요. 여유로운 척하면서, 노래가 어떤 분위기인지 파악하는 거죠.

 

 

거쳐 간 수많은 배틀 가운데 유독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모든 배틀이 제겐 다 의미가 깊지만,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아시아 예선에서 우승해 2015년 뉴욕 브롱크스(Bronx)에서 열린 파이널 배틀에서 초청되어 우승한 게 기억에 남아요. 왜냐하면 저는 동양인이고, 어떻게 보면 힙합 문화와 거리감이 있잖아요. 심지어 당시 심사위원들이 이 댄스 문화를 앞장서서 이끈 선구자분들이었는데, 그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이 동양인으로서 그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느낌이었어요. 뉴욕 브롱크스 지역이 첫 번째 힙합 파티가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잖아요. 그때 뭔가 나 자신도 잘하고 있는지 고민이 많던 시기였는데, 그런 상징적인 곳에서 우승했다는 점이 유독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당시 외국 관객들의 반응도 기억이 나는지.


그때 대회가 요즘처럼 엄청나게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나름 로컬에서 매년 진행하는 유명한 배틀 대회였어요. 매 라운드 올라갈 때마다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아서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결승전 때 관객들과 심사위원 모두 ‘너 좀 멋있다’라며 뜨겁게 반응해 줬던 게 기억이 나네요. 뭔가 모두에게 축하받는 기분이었어요.  
 


해외에서는 ‘오천’을 뭐라고 부르나요.


나라마다 좀 다른데요. 미국은 ‘Five Thousand’, 일본은 ‘ごせん(고센)’, 중국은 ‘五千(우첸)’이라고 불러주더라고요.  
 

 

 

 

〈Be Mbitious〉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제 커리어에서 도전이 필요했고, 그보다 더 큰 이유 하나는 빛고을댄서스를 알릴 수 있는 다음 단계의 목표를 찾고 싶었어요. 제가 느끼기에 빛고을댄서스는 하는 일 자체가 의미도 있고,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그만큼 리턴이 오지 않는 것 같아 이를 좀 더 수월하게 만들기 위해 큰 프로그램에 나가 직접 알리고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방송 첫 출연 이후, 수많은 경쟁자를 뚫고 마침내 Mbitious의 일원이 되어 〈스트릿 맨 파이터〉에 바로 속행. 그 결과, 총합 3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폭풍 같은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요. 돌이켜 봤을 때, 〈Be Mbitious〉와 〈스트릿 맨 파이터〉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정말이지, 체력적이든 정신적이든 스스로 모든 방면에서 한계를 느낀 기간이었어요. ‘이건 안 될 것 같은데’ 싶다가도 정신 차리고 보면 ‘이게 왜 돼지?’ 싶은 상황도 많았고요. 항상 제가 저를 뛰어넘어야 했던 거죠. 그래서 개인적으로 많은 성장을 거둔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춤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제가 지금껏 해온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도 접해보고, 뭔가 새로운 것도 배워보고, 내가 이런 부분에서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 경험 덕에 이제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유하게 적응해 나갈 힘을 얻었죠.



현재 Mbitious에서 리더 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본인은 어떤 스타일의 리더라고 생각하는지?


일을 꼼꼼하게 잘 처리하는 리더라기보단, 노는 걸 좋아하는 리더인 것 같습니다. 특히 멤버들과 함께 노는 걸 너무 좋아해요. 
 


Mbitious의 무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Nvious 여러분들이 ‘엠망진창’이라는 얘기를 많이 쓰거든요. 보통 팀이라면 되게 단일화되고 딱딱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저희 Mbitious는 좋은 팀워크 안에서도 각자 개성이 다양하고 뚜렷하거든요. 그 부분이 아주 큰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강점으로 ‘음악성’을 자주 뽑는데. 실제로 어떤 음악이 나오든 자신의 안무로 완벽히 소화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도 했죠. 음악을 들을 때 어떤 부분을 주의 깊게 듣는지.


음, 이건 음악마다 다른데 아무래도 멜로디를 우선시하죠. 왜냐하면 어찌 됐든 저는 노래의 음률에서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편이거든요. (평소에도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인가요?) 매일 듣죠. 거의 일상이죠.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 그리고 꼭 한번 붙어보고 싶은 사람으로 ‘HOZIN’을 꼽았습니다. 어떤 점에서 반했고, 이 부분은 내 것으로 가져오고 싶다 하는 게 있을까요.


처음 HOZIN을 접하게 된 건 인터넷 영상이었어요. 진짜 말 그대로 음악을 몸동작으로 보여주는 느낌이랄까요. 처음 듣는 노래라도, 뭔가 HOZIN이 춤을 추면 하나하나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HOZIN 형에게 뺏어올 수 있는 게 있다면 저는 ‘표현력’을 뺏어오고 싶습니다. 표현력은 정말 세계적으로 탑이에요. 아직 배틀이 성사된 적은 없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저 나름대로 되게 의미 있는 날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오천'이라는 작명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어릴 때 주변 동갑내기 친구들과 영어 사전을 뒤져 가면서 댄서 이름을 열심히 만들던 시기가 있었어요. 저는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에 많이 참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한 번 참가하더라도 단번에 뇌리에 박히는 이름을 만들고 싶었죠. 그때 당시 혼자 자취를 하면서도 돈이 없어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지갑을 열어보니 단돈 오천 원만 있더라고요. 마침 숫자로만 닉네임을 정한 댄서가 없었고, 이거라면 내 초심을 기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천’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과거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많은 우승 커리어와 인지도를 얻은 지금 돌이켜 봤을 때, 이 닉네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주 잘 지었다고 생각해요. 다른 댄서들과 교류하면서 이런 사연을 알려주고 나면 되게 슬프다고 해주더라고요. 물론 해외로 나가면 ‘오천’이라는 이름이 단위나 환율 때문에 가격이 많이 커지기도 하는데, (웃음) 하여튼 지금은 정말 만족하는 이름입니다.

 


평소 춤 연습은 어떻게 하시는 편인가요? 
 

예전에는 안 되는 동작을 구현하고 싶은 목적이 커 반복 연습을 많이 했다면, 요즘은 제가 그때그때 느끼는 걸 꾸밈없이 표현하려고 하고 있어요. 연습실을 빌리기보다도 그냥 집 근처 공원 같은 곳에서 카메라를 켜두고 음악을 튼 다음에 편하게 연습을 즐겨하는 편입니다.

 


댄서가 된 이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저는 Mbitious를 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댄서 생활을 하면서 기뻤던 순간은 엄청 많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은 그런 과정이 모두 합쳐져 낳은 결과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좋은 친구들을 만나 이렇게 많은 응원도 받아보고, 또 새로운 영역에서 도전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목표를 전부 이룬 것만 같아요. 
 

 

오천의 춤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음, 오천의 춤은 ‘오천’으로 정의하겠습니다. 제 춤은 정말 저만 할 수 있거든요.

 

 

Mbitious로서 보여주고픈 행보, 그리고 앞으로의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더욱 바쁘게 움직여서 여기저기 다양한 영역에서 자주 찾아뵙고 싶은 게 제 바람이에요. 개인적인 목표를 꼽자면 후배들에게 좀 더 좋은 자리를 많이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나라는 큰 행사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한국은 지금 대부분이 없어졌거든요. 다시 예전처럼 규모가 큰 행사도 많이 만들어 우리나라 댄서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고, 그거와 동시에 댄서로서 오래오래 계속 잘 활동하고 싶은 게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늘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팬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우선 꾸준히 응원해 주시는 점 너무 감사드려요. 사실 예전에는 그냥 춤추는 게 재밌어서 댄서를 했다면, 요즘에는 제 춤에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춤의 또 다른 원동력을 느끼고 있거든요. Nvious를 알고 난 뒤로 요즘 긍정적으로 바뀌고 자신감도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저희도 이 받은 응원을 오래오래 보답하도록 노력할 테니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 인터뷰. 장준환 (대중음악 웹진 IZM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