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그래미의 K팝 부재
2024년 <제66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K팝은 볼 수 없었다. 방탄소년단(BTS)의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세 차례 연속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Best Pop Duo Group Performance) 노미네이션과 2022년 ‘Butter’의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후보 지명과 그래미 퍼포먼스로 “K팝의 그래미 침투”의 기대감을 한껏 그러모았으나 올해는 후보 지명에 실패했다. 전세계에 깊이 스며든 K팝 문화가 작품적으로도 인정받길 바라는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곱씹었다.
물론 2023년에도 K팝은 큰 사랑을 받았다. 빌보드 핫100 정상을 차지한 정국(Jung Kook)의 ‘Seven’과 지민(JIMIN)의 ‘Like Crazy’는 방탄소년단(BTS)이 여전히 K팝의 중심축임을 증명했고, BLACKPINK(블랙핑크)는 미국 최대 페스티벌 중 하나인 코첼라(Coachella)의 헤드라이너로 섰다. 숏폼 콘텐츠 기반으로 ‘Cupid’ 돌풍을 일으킨 FIFTY FIFTY(피프티 피프티)와 3번째 정규 앨범 [5-Star]로 빌보드 200(앨범 차트)에서 1위를 거둔 Stray Kids(스트레이 키즈)가 돋보인 한 해였다.
이러한 압도적 수치 지표는 <2023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빛을 발했다. 다관왕을 기록한 방탄소년단(BTS)과 후보에 오른 BLACKPINK(블랙핑크), SEVENTEEN(세븐틴) 등 K팝의 거대한 물결을 반영해서일까, <2023 빌보드 뮤직 어워드>는 최우수 K팝 앨범(Top K-Pop Album) 등 K팝 부문 4개 부문을 신설했고 최우수 글로벌 K팝 아티스트(Top Global K-Pop Artist) 부문에서 NewJeans(뉴진스)가 첫 수상의 영예를 가져갔다.
NewJeans(뉴진스)는 <2024 빌보드 위민 인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그룹(Group of the Year)를 받기도 했다. 빌보드 위민 인 뮤직(Billboard Women in Music Awards)은 음악 산업에 뚜렷한 성과를 남긴 여성 아티스트를 위해 2007년에 제정되었고, 이번 NewJeans(뉴진스)의 성과와 2023년 TWICE(트와이스)의 브레이크스루 아티스트(Breakthrough Artist) 수상 등 K팝 아티스트의 활약상이 돋보였다.
그래미와 레코딩 아카데미
정량평가가 주를 이루는 빌보드 뮤직 어워드와 달리 그래미는 레코딩 아카데미(The Recording Academy)의 정성평가에 달려있다. 뮤지션과 제작자, 엔지니어 등 음악 산업 종사자의 구성은 공신력을 확보했으나 그간 “백인중심적”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몇 년 간 투표인단과 투표 방법의 변화를 주었지만 보수성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는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를 수상한 힙합 앨범이 없다는 게 대표적 반증이다. 이번 시상식에서 닥터 드레 글로벌 임팩트상(Dr. Dre Global Impact Award)를 받은 래퍼 JAY-Z(제이지)도 Beyoncé(비욘세)의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 수상 실패와 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디제이 재지 제프 & 더 프레시 프린스)의 1989년 <제32회 그래미 어워드>의 최우수 랩 퍼포먼스(Best Rap Performance)가 송출되지 않았다는 과거 사례를 들며 이 점을 꼬집었다.
변화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서아프리카의 리듬 요소에 영미권 장르 음악을 버무린 아프로비츠(Afrobeats)는 Burna Boy(버나보이)와 CKay(씨케이)같은 아프리카 뮤지션을 중심으로 2010년대 말부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빌보드는 2022년부터 아프로비츠 차트(BillBoard U.S. Afrobeats Songs)로 흐름을 반영했고, 그래미도 최우수 아프리카 뮤직 퍼포먼스(Best African Music Performance)를 신설했다. 틱톡에서 큰 인기를 누린 ‘Water’의 주역 Tyla(타일라)가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22년부터 개설된 최우수 무지카 어바나 앨범(Best Música Urbana Album)도 마찬가지다. 라틴팝 부문을 세분화해 레게톤의 경향성을 반영했다. 주요 부문(General Field) 수상이 종종 불발되었던 라틴팝 슈퍼스타 Bad Bunny(배드 버니)와 Karol G(카롤 지)도 이 부문을 수상했다. 최우수 얼터너티브 재즈 앨범(Best Alternative Jazz Album)과 최우수 프로그레시브 알앤비 앨범(Best Progressive R&B Album)처럼 다채로운 스타일을 아우르고 있는 그래미인만큼 K팝 부문이 새롭게 도입되더라도 놀랍지 않다.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과 작곡과 작사로 풀어내는 자기주도형 K팝 솔로 아티스트도 하나의 방안이다. 2024 그래미는 ‘비 클래식 부문 올해의 프로듀서(Producer of the Year, Non-Classical)’과 ‘비 클래식 부문 올해의 송라이터(Songwriter of the Year, Non-Classical)’를 주요 부문에 포함시켰다. 작사 작곡과 만듦새와 “자기 이야기”를 하는 뮤지션에게 점수를 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K팝 특유의 정교하고 화려한 사운드와 탄탄한 안무에 높은 예술성의 자작곡을 써낸 솔로 뮤지션이 나온다면 레코딩 아카데미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할 것이다.
K팝과 그래미의 미래
K팝과 그래미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 보수적 성향으로 힙합과 라틴 뮤직에 문을 굳게 걸어 잠구던 역사가 있지만 역으로 21세기 초반 시점에 방탄소년단(BTS)의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노미네이션과 ‘Butter’ 퍼포먼스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었다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김영대 평론가는 “군대 공백기를 거친 방탄소년단(BTS)이 완전체로 돌아와 그래미에서 깜짝 무대를 펼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어본다”라고 말했다.
21세기에 K팝은 비약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와 BLACKPINK(블랙핑크)를 필두로 TWICE(트와이스)와 NewJeans(뉴진스) 등 많은 K팝 그룹이 빌보드 차트와 콘서트 및 투어, 숏폼 콘텐츠 등 여러 분야에서 성과를 기록했다. 20세기에 꿈꾸기 어려웠던 영미권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에 선 것이다. 아성과도 같은 그래미에 눈길이 향하지만 너무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최근 대두되는 K팝 위기론을 극복하고, K팝 문화를 건강하게 유지해 나간다면 방탄소년단(BTS)의 사례처럼 희소식 또한 동반될 것이다.
제66회 그래미 이모저모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코미디언 Trevor Noah(트레버 노아)가 진행한 2024년 <제66회 그래미 어워드>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갖가지 흥미로운 이슈와 감동적 수상 소감, 멋진 퍼포먼스로 꾸며졌다.
통산 네 번째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로 Frank Sinatra(프랭크 시나트라)와 Paul Simon(폴 사이먼), Stevie Wonder(스티비 원더) 같은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해당 부문 최다수상자로 등극한 Taylor Swift(테일러 스위프트)와 ‘What Was I Made For’로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수상으로 다시금 “그래미 총아”임을 증명한 Billie Eilish(빌리 아일리시), 빌보드 핫100 8주 1위의 히트곡 ‘Flowers’로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를 받은 Mylie Cyrus(마일리 사이러스) 등 전체적으로 여성 아티스트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퍼포먼스도 풍성했다. 여든 고령에 처음으로 그래미 무대에 선 거장 싱어송라이터 Joni Mitchell(조니 미첼)은 ‘The Joke’를 부른 후배 Brandi Carlile(브랜디 칼라일)과 ‘Both Sides Now’로 감동을 안겨줬고, “영원한 피아노 맨” Billy Joel(빌리 조엘)은 재즈 팝 신성 Laufey(레이베이)의 첼로에 맞춰 신곡 ‘Turn the Lights Back On’을 연주했다. Dua Lipa(두아 리파)는 Tame Impala(테임 임팔라)의 Kevin Parker(케빈 파커)와 협업한 ‘Houdini’와 신곡 ‘Training Season’을 매시업했고, Travis Scott(트래비스 스콧)도 [Utopia] 메들리로 강렬한 무대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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