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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MIXX] K팝, 모방에서 창조와 재창조 사이를 오가며 길을 만들다 | PLUS MAGAZINE ORIGINAL

2023.05.29

 

| 글. 박수진 (대중음악 웹진 IZM 필자)

 

 

 

 

지난 3월 20일 그룹 NMIXX가 첫 번째 EP [expérgo]를 발매했다. NMIXX라는 활동명, 즉 now, new, next에서 앞 글자를 따온 ‘N’과 섞는다는 뜻의 ‘MIX’를 합쳐 만든 그룹명처럼 “새로운 시대를 책임질 최상의 조합” NMIXX의 음악은 이번에도 선언적이다. 이름하여 믹스 팝(MIXX POP). 두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장르를 섞어 독특하고 독창적인 질감의 노래를 뽑아냈다.

 

 

이들의 당찬 시도는 2022년 데뷔 싱글 [AD MARE]의 타이틀 ‘O.O’에서부터 나타났다. 놀라움에 커진 눈과 감탄사 ‘Oh!’를 형상화한 제목은 “새로운 무언가를 보고 놀랄 준비를 하라”는 날 선 메시지를 담았다. 후속 싱글 [ENTWURF]의 타이틀 ‘DICE’에서 역시 “주사위 게임 속 등장한 미스터리 적대자에 맞선다”는 콘셉트를 재지한 사운드와 색소폰, 트럼펫, 그리고 트랩 비트 등을 한데 묶어 매끄럽게 표현해냈다.

 

 

신보는 여기서 한 발을 더 내디뎌 대중 곁으로 향한다. 과거 낙차 큰 장르를 이어 붙인 탓에 NMIXX 음악의 접근성이 다소 떨어졌다면 이번 음반 [expérgo]는 노래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기존 믹스 팝 노선은 유지하되 장르 간 유기성을 높여 더욱 즐기기 좋은 음악을 들고 왔다. 프랑스 고전 동요 ‘Frère Jacques’을 샘플링(Sampling)한 선공개 곡 ‘Young, Dumb, Stupid’부터, 머리 곡 ‘Love Me Like This’는 이질적인 장르의 합보다는 곡 구간별 명확한 구별 짓기로 듣는 맛을 살렸다. 작법에 변화가 있다는 건 성장한다는 증거. K팝의 부피가 날로 커지는 오늘날 NMIXX의 믹스 팝이 도달할 정상이 궁금해진다.

 

 

 

 

 

NMIXX가 서로 다른 장르들을 덧붙여 음악을 썼다면 곡 안에 기존 노래를 끌어와 작품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샘플링이다. 과거 발매된 음악 중 일부 소스를 가져와 새 트랙에 녹여내는 것을 뜻한다. 얼마 전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이 낸 음반 [FACE]의 첫 곡 ‘Face-off’에도 샘플링이 쓰였다. 쉽게 연주할 수 있어 피아노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자주 찾곤 하는 작자 미상의 연주곡 ‘고양이의 춤’이 노래 도입부에 흘러나온다.

 

 

샘플링의 활용은 클래식과 오래된 명곡, 대중음악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먼저 클래식. 2007년 많은 사랑을 받은 아이비(Ivy)의 ‘유혹의 소나타’는 Beethoven의 ‘엘리제를 위하여’에 빚을 진다. JTBC의 인기 방송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3>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연 씨야(SeeYa)의 대표곡 ‘사랑의 인사’는 Edward Elgar의 동명 곡에, 갑작스러운 해체로 아쉬움을 남긴 그룹 여자친구(GFRIEND)의 ‘여름비(SUMMER RAIN)’는 Schumann의 ‘시인의 사랑’에서 재창조됐다.

 

 

저작권이 원곡자 사후 70년까지 보호되기 때문에 거의 모든 클래식이 저작권에서 자유롭다면, 대중음악 샘플링은 늘 사용료를 내야 한다. 곡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 위험 부담이 있지만 그럼에도 멋진 샘플링은 노래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싱글차트 2위에 안착하며 월드 스타가 된 싸이(Psy) 히트곡 ‘챔피언’은 독일 음악가 Harold Faltermeyer의 ‘Axel F’에서 메인 선율을 따왔는가 하면 엄정화 가수 커리어를 재점화한 ‘D.I.S.C.O(Feat. TOP)’는 영국 트리오 Delegation의 디스코곡 ‘Heartache №9’에서 싹 틔우며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영원한 소울 음악의 대부 James Brown의 명곡 ‘It’s A Man’S, Man’S, Man’S World’는 해외 뮤지션 Fergie, Ice Cube, Rick Ross를 포함해 방탄소년단 슈가(SUGA)의 또 다른 페르소나 Agust D 동명 곡에 샘플링되며 무려 76개 곡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K팝에 샘플링이 사용된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 시작은 흔히 K팝 1세대로 칭해지는 1990년대에도 있었고, 혹은 그보다 먼 옛날 K팝이 지금의 ‘K팝’의 의미를 가지기 전부터 성행했다.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렵지만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한국을 뒤흔든 변진섭의 히트곡 ‘희망사항’은 미국 대중음악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명 작곡가 George Gershwin의 ‘Rhapsody In Blue’를 샘플링했고,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Beethoven 가곡 ‘Ich Liebe Dich’를 가져왔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외에도 소녀시대(GIRLS’ GENERATION), Red Velvet(레드벨벳)의 뒤를 이어 최근 후배 음악가 aespa가 부르기도 한 S.E.S.의 ‘Dreams Come True’는 핀란드 듀오 Nylon Beat의 꿍짝이는 비트가 매력적인 ‘Like A Fool’을 샘플링했다. 블랙뮤직의 힙합, 뉴 잭 스윙 등의 장르가 날개를 편 1990년대에는 샘플링이 아닌 영감, 레퍼런스란 방패막 아래 외국 음악을 그대로 들여오는 경우가 빈번하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Deux), 드렁큰 타이거 등의 앨범에서 그 잔향을 찾을 수 있다. 저작권이 모호했던 시절, 빠르게 시류와 음악을 읽어 한국 음악 지평을 넓혔다는 면에서 ‘저작권 문제’는 시대적 혜택을 입었다.

 

 

샘플링 작법은 예나 지금이나 반복된다. 하지만 그때와 현재의 차이는 명확하다. 앞선 1990년대의 예처럼 당시 음악이 상당 부분 문화를 창조 없이 옮겨왔다면 작금의 샘플링은 ‘모방’ 아닌 퓨전이고 융합이자 융화에 가깝다. 가져오되 노래의 특성, 아티스트의 콘셉트에 맞춰 적절히 중심을 잡는다.

 

 

다만 샘플링이 적극 활용되기 시작한 건, K팝의 화력이 점점 뜨겁게 치솟고 있는 근래의 일이다. K팝이 여러 작곡가에 의해 공동 창작되고, 파트 나눠 쓴 뒤 이를 합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며 한동안 샘플링의 자취는 묘연했다. 곡 설계에서부터 밑 작업이 진행되어야 하고, 또 다수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샘플링이 묘안이 된 건 K팝의 보편성 획득 방법으로 주목받으면서다. 2022년 한 해 동안 글로벌 앰배서더로 많은 해외 팬을 보유한 BLACKPINK가 ‘Shut Down’에 Nicolo Paganini의 ‘라 캄파넬라’를, Red Velvet(레드벨벳)이 ‘Feel My Rhythm’에 Bach의 ‘Air on the G String’를 샘플링한 건 비단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여기서 나아가 최근 K팝 샘플링은 ‘K-Culture’에 좀 더 강점을 두는 추세다. 클래식, 팝송을 샘플링하던 경향에서 이제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 음악으로 그 범위를 넓혔다. NewJeans가 참여한 한 대형 음료 브랜드의 CM송 ‘Zero’는 한국에서 돌림노래처럼 불리던 ‘코카콜라 맛있어 / 맛있으면 또 먹어’란 구전동요를 노래 속에 넣었다. 발매 당일, 이례적으로 CM송이 주류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톱 10에 오르는 성과를 냈다.

 

 

BLACKPINK 멤버 중 가장 마지막으로 솔로 음반을 발매한 지수(JISOO) 역시 싱글 ‘꽃’에 한국 놀이 중 하나인 ‘꽃 찾기 놀이’ 때 부르는 ‘우리 집에 왜 왔니 / 꽃 찾으러 왔단다’의 일부 구절을 당겨왔다. 2010년 동요를 차용한 2NE1의 ‘날 따라 해봐요’가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 관심을 받는 지금, 노래에 묻은 K컬처는 상징적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K팝은 저변을 확장 중이다. 한 외국의 유명 매거진은 K팝을 아이돌 음악에 한정하며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5~6명 혹은 그 이상의 멤버로 구성된, 소속사의 지도를 받는 연습생 출신의, 칼군무와 포인트 안무를 주력으로 하는 그룹의 노래. 그리 틀린 설명은 아니다. 여기에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 구체적인 세계관 설정, 적극적인 SNS 소통, 멤버를 중심으로 한 자체 콘텐츠 제작 등이 추가될 수도 있다. 샘플링도 빼놓을 수 없다. K팝이 K를 넘어 더 넓은 ‘Pop(ular)’의 세계로 나갈 때 샘플링은 단숨에 국가의 거리를 좁힌다.

 

 

K팝의 확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한 지금 샘플링은 섬세하게 진화하고 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디스코 송 Gloria Gaynor의 ‘I Will Survive’를 소환한 IVE(아이브)의 ‘After LIKE’는 디스코가 갖는 장르적 의미, 원곡이 가진 메시지를 훌륭하게 차용해 ‘나를 사랑하는 자세’를 부각한다. (여자)아이들은 캐릭터가 가진 서사를 그룹 이미지로 비틀어 사용, 음악 씬에 멋진 한 방을 날렸다. 오페라 <카르멘>의 자유분방한 주인공 카르멘이 부르는 ‘하바네라’를 샘플링한 ‘Nxde’는 뮤직비디오에선 ‘마릴린 먼로’를 묘사하며 음악의 외양을 확대했다.

 

 

NMIXX의 믹스 팝 또한 더욱 크게 샘플링의 범주 옆에 똬리를 튼다. 오늘날 K팝은 이렇게 항해한다. 모방으로 시작했던 한국의 음악 시장이 이제 창조와 재창조 사이를 오가며 세상을 호령, 길을 만들고 있다. K팝이 향하는 길. 그 길의 끝에 무엇이 놓일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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