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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대 K-POP, Y2K 문화 드럼앤베이스(Drum’n’Bass)를 각색하다 | PLUS MAGAZINE ORIGINAL

2023.05.29

| 글. 장준환 (대중음악 웹진 IZM 필자)

 

 

 

 

K팝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일명 ‘4세대’로 분류되는 아이돌을 기준으로 ‘드럼앤베이스(Drum’n’Bass; 이하 DnB)’ 장르 활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올해만 해도 벌써 흥미로운 결과물이 여럿 등장했다. tripleS (트리플에스)는 열 번째 멤버가 공개됐을 무렵, 그룹의 방향성을 제시할 주요 기점인 미니 1집의 마지막 트랙 ‘초월 (Chowall)’의 주요 작법으로 DnB를 선정했다.

 

 

IVE (아이브)의 정규 1집 트랙 ‘섬찟 (Hypnosis)’은 가볍고 빠른 잽과 같다. 어떠한 단서조차 없다가, 리즈의 신묘한 보컬이 등장하는 프리 코러스 구간에 이르러 빌드업 소재로 DnB를 짧고 굵게 등장시킨다. NewJeans와 LE SSERAFIM (르세라핌)의 운용 방식은 과감한 스트레이트다. 코카콜라와의 협업을 거친 ‘Zero’의 경우 잘게 세분화된 DnB를 공격적으로 배치해 이목을 끌어야 하는 CM송의 목적을 충족한다. 반면 DnB를 몽환적 요소로 해석한 후자 ‘Burn the Bridge’는 후속작의 트레일러 배경음으로 삽입되어, 앨범 [UNFORGIVEN]의 진취적 콘셉트와 그룹의 과감한 이미지를 투영하는 장치로 활용한다.

 

 

 

 

분명 신곡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이 현상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라도 체감해본 적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설명을 짚고 넘어가자. 등장 배경이나 발전 양상 같은 역사적 요소를 제외한 DnB를 이루는 중심 요소는 다음과 같다. 먼저 테크니컬한 드럼을 이용해 기존 박자를 세세하게 쪼갠 ‘브레이크비트’ 구간을 반복해 기틀을 마련한다. 여기에 묵직한 ‘베이스’를 투입해 울림을 강화하고 무게감을 더한다. 간단하게 이 둘을 합한 연산법이 기초 형태다. 대신 그 전개가 복잡하고 신선할수록 디제이의 역량과도 직결되기에 160~190BPM을 웃도는 빠른 속도감, 당김음이나 독특한 드럼 패턴을 이용한 작곡과 시퀀싱이 선호된다.

 

 

팬데믹이 사그라들고 Beyonce를 비롯한 여러 뮤지션이 댄스 리바이벌의 필요성을 선포한 이래 메이저와 마이너 신 모두가 활발히 교류를 거치며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댄스 재건을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다. 아무리 그래도 도취와 각성에 몰두하는 DnB와 대중성이 중심이 되는 K팝이 결탁을 맺는 그림은 잘 떠올리기 힘들다. 더 세고 더 강한 음악을 추구하던 하드코어의 1990년대, 언더그라운드 클럽 신에서 탄생해 이미 수차례의 흥망성쇠를 거친 ‘드럼앤베이스’는 대체 어떻게 다시 소환되어 신유행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모든 매체가 일제히 가리킨 곳은 신유행의 중심지인 틱톡, 그 중에서도 영국의 어린 싱어송라이터 PinkPantheress의 등장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요즘 등장하는 대부분의 유행은 틱톡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배경을 이해하려면 2020년, 우울과 은둔의 키워드를 대중적으로 해석한 Billie Eilish가 Z세대의 팝스타로 떠오르고, 홈 레코딩 특유의 저음질로 몽롱한 감성을 자극하는 베드룸 팝(Bedroom Pop)이 유행하던 배경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당시 SoundCloud와 틱톡 등지에서 활동하던 20살 뮤지션 PinkPantheress는 DIY 기조에 충실한 배드룸 팝 아티스트였지만, 동시에 과거 유행하던 DnB의 순도 높은 박자감을 탐구하고 즐기던 매니아였다. 그 취향이 반영된 걸까. 그녀는 좋아하는 두 영역을 적절하게 배합한 음원을 공개하기 시작했고, 나긋나긋한 보컬과 정신 없는 비트가 자아내는 상반되면서도 오묘한 조합에 매력을 느낀 청소년층이 숏폼 플랫폼에서 큰 반응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등장한 piri & tommy과 Vierre Cloud가 동시대 주목을 받으면서 장르 자체에 팬덤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 유행의 시초로 여겨진다. 물론 이 현상은 비단 영국의 독점만이 아니다. 드릴(Drill) 음악을 구사하는 또 다른 틱톡 스타 Ice Spice와 함께한 ‘Boy’s a liar Pt. 2’(2023)는 현재 미국의 빌보드 차트 상단을 정복하며 국경을 가리지 않고 위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알앤비 아티스트 이소 (iiso)와 BÉBE YANA (베이비 야나) 등이 이러한 스타일을 국내로 가져와 평단과 리스너들의 호응을 받은 적 있다. Avril Lavigne의 팝 펑크(Pop Punk)와 My Chemical Romance의 이모 록(emo rock)이 그랬듯, 세대를 거듭하며 기성세대와 차별성을 부여해줄 ‘독특한 음악’을 정처없이 찾아 떠도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니즈에 부합했던 다음 타자가 바로 DnB였던 것이다.

 

 

여기서 눈치챌수 있듯 요근래 등장한 드럼앤베이스 유행의 시작은 과거의 유산을 정확히 복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은 개량을 동반하기 마련. 2021년 시작을 알린 이 일련의 흐름은 여성 보컬과 흐릿한 멜로디, 공간감 등 안정된 사운드스케이프에 집중함과 동시에 복잡한 리듬의 상반된 매력을 발산하는 ‘앳모스피어릭 드럼앤베이스’라는 표현에 가깝게 인용되곤 한다. 이 부담스럽지 않은 미묘한 차이가 관심을 유발했으며, 현재 K팝에 상륙한 흐름도 이 영역에 속한다.

 

 

기존 DnB를 알고있는 청자층은 2000년대 후반 이후 Pendulum과 Rudimental이 페스티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EDM 시대와 결합해 대중화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 시점의 ‘강력하고 폭발적인 류의 드럼앤베이스’를 주로 기억하곤 한다. 지금의 DnB와 과거의 DnB는 분명 다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과연 K팝과 드럼앤베이스의 접점은 이번이 처음일까?

 

 

사실 K팝 영역에서 드럼앤베이스의 사용은 생각보다 빈번하게 이뤄져 왔다. 물론 용도와 사운드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앞에서 장르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라기보다는 DnB가 가진 속도감을 활용하기 위한 부가적 장치에 가깝고, 이에 적합한 2010년대 이후 대중적 노선을 취한 DnB를 운용하는 식이었다. 말 그대로 ‘드럼’과 ‘베이스’를 강조하며 곡에 역동감을 주는 형태다.

 

 

방울진 사운드로 청량감을 강조한 TWICE (트와이스)의 ‘CHEER UP’(2016), 그리고 영롱한 신스 선율이 여울지는 STAYC (스테이씨)의 ‘SO BAD’(2020)를 보자. 정직한 빌드업이 끝나고 하이라이트에 도달하는 순간, 특유의 강직함을 자랑하는 정통 DnB 비트가 터져 나온다. 전환되는 지점의 대비가 명확하기에 리스너는 창작자가 원하는 포인트가 어딘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반면 아이오아이 (I.O.I)의 ‘너무너무너무’는 DnB 특유의 박자감과 톤을 시작부터 화려하게 투입해 ‘그룹이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콘셉트에 설득력을 부여하고 몰입하기 쉬운 환경을 마련한다.

 

 

 

 

2022년 이후의 K팝이 장르를 차용하는 방식은 더 진취적이고 활용 범위가 넓다. 곡의 요소로 활용하는 면도 분명 있지만, 무엇보다 부상하는 트렌드를 빠르게 취합하고 그룹만의 차별점으로 개량하려는 취사 선택의 성질이 강하게 드러난다. 2000년대 초를 주름잡던 ‘UK 개러지(UK Garage)’가 디제이 듀오 Disclosure로 하여금 전세계 클럽 신의 주류로 올라선 시기에 SHINee (샤이니)의 ‘Prism’(2016)과 EXID의 ‘Too Good To Me’(2017), GOT7 (갓세븐)의 ‘Lullaby’(2018), 더보이즈 (THE BOYZ)의 ‘Salty’(2020)가 각자 다양한 스타일을 내놓으며 그 파급의 족적을 연도별로 남긴 것을 볼 수 있다.

 

현대로 넘어오면 빌보드 10위를 차지한 래퍼 Lil Uzi Vert의 ‘Just Wanna Rock’의 유행, 그리고 틱톡 문화의 결합으로 다시금 각광받기 시작한 ‘저지 클럽(Jersey Club)’ 비트를 언급할 수 있다. 들릴듯 말듯 덤덤한 타격감만을 남기며 감각적인 노스탤지어를 분사하는 NewJeans의 ‘Ditto’, 이와 정반대로 격정적인 안무와 함께 폭발적으로 내려 찍으며 강력하게 심장을 울리는 세븐틴 (SEVENTEEN)의 ‘손오공’까지, 그 사용법은 실로 다양하다. 이 부분이 흥미롭다. 장르 차용의 첫 단계는 부상하는 흐름을 의식하고 포착하는 것일지언정, 지금의 K팝에서는 단순한 답습을 넘어선 새로운 무기로 연마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이러한 행위는 일방적인 수입이 아닌 수출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흐름의 중심에 서있는 PinkPantheress의 몇몇 인터뷰를 찾아보면 본인이 K팝의 오랜 팬이라고 언급하는 대목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2021년 발매된 ‘Met You’의 경우 EXID의 곡 ‘낮보다는 밤’(2017)을 샘플링한 작업물이다.

 

 

오늘날 4세대 아이돌은 각양각색으로 DnB를 활용한다. 현상을 따라가기 위해, 혹은 색다른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쓰기 위해, 더 나아가 대중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바리에이션을 남기며 총알 없는 전쟁을 펼친다. 트렌드를 파악하려면 무조건적으로 해외로 찾아가야 한다는 것도 어느덧 옛말이 되었다. 당대 유행을 편견 없이 포용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하나하나를 스펙트럼의 일부로 삼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K팝, 급격히 커진 몸집만큼이나 성장 속도는 무섭도록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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