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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leS/LOVElution] 한국식 하이틴이 무너뜨리는 K팝과 현실 사이의 장벽, 'Girls' Capitalism' | PLUS MAGAZINE ORIGINAL

2023.08.29

 

| 글. 한성현(대중음악 웹진 IZM 필자)

 

 

 

 

한국식 하이틴, 그 의미와 계보


K팝 아이돌, 특히 걸그룹 멤버를 구성하는 주요 나이대는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다. 과거 섹시 콘셉트와 걸크러시 등 여러 테마를 지나 오늘날의 소위 4세대 걸그룹이 전격 채용하는 이미지도 이 연령대에 걸맞는 “하이틴”이다. 소녀들의 우정과 사랑을 주 소재로 다루며 패션의 경우는 교복 내지 성인과 분명한 차이가 있는 자유분방한 의상 착용이 특징적이다. 
 

 

K팝이 차용하는 하이틴 이미지는 아무래도 서구적인 이미지에 뿌리를 많이 둔다. 선미의 ‘You can’t sit with us’나 YENA (최예나)가 발표한 ‘SMILEY (Feat. BIBI)’ 등에서는 영화 〈클루리스〉(1996)나 〈[퀸카로 살아남는 법〉](2004)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당장 2023년에도 aespa가 야외 수영장, 사물함 캐비닛 등 미국 고등학교의 이미지로 ‘Spicy’ 속 현실 세계를 가득 채웠고, (여자)아이들도 ‘Allergy’와 ‘퀸카 (Queencard)’ 연작 뮤직비디오에서 유사한 콘셉트를 차용하며 〈화이트 칙스〉(2004)의 요소를 오마주한 바 있다. NMIXX가 ‘Roller Coaster’에서 배경으로 삼은 장소도 마찬가지로 미국 스타일의 고등학교와 교외 주택가였다.

 


이러한 K팝 걸그룹의 하이틴 문화 유행 속에 이와 대비되는 하나의 개념이 서서히 사용되고 있다. “K-하이틴”이 그것이다. 아마 이 단어에는 실제와의 거리가 있는 서구권 기반 하이틴 문화에 대한 피로감, 그리고 K팝이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문화적 사대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K-하이틴은 동일하게 10대 학생들의 정서를 포함하되 표현 방식에 있어서 한국적인 요소를 채택하고 더러는 부각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한국식 하이틴 계보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이자 출발점으로 볼 수 있는 그룹은 2015년 데뷔한 걸그룹 여자친구 (GFRIEND)다. ‘유리구슬 (Glass Bead)’, ‘오늘부터 우리는 (Me gustas tu)’, 그리고 ‘시간을 달려서 (Rough)’로 이어진 이른바 ‘학교 3부작’은 한참 앞서 한국적인 특성을 적극 드러냈다. ‘오늘부터 우리는 (Me gustas tu)’에서 여섯 멤버가 여름방학을 위해 찾는 곳은 머나먼 해외의 바다가 아니라 한국의 시골과 아이스크림을 파는 구멍가게였고, ‘시간을 달려서 (Rough)’ 또한 국내 대학 캠퍼스나 버스 정류장 등의 장소를 매개로 하여 한국인의 공감을 끌어내는 눈 내리는 겨울 졸업식 테마를 내세웠다.

 


작년 12월에는 NewJeans가 ‘Ditto’의 뮤직비디오로 교복 콘셉트를 사용하기도 했다. 전체적인 비주얼은 과거 1990년대~2000년대 초 제작되었던 한국의 학생 드라마와 흡사했고, 구식 캠코더와 피쳐폰 등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아련한 향수 정서에도 부합하는 상징물이었다. 스릴러 혹은 판타지 세계관을 꾸렸던 Billlie (빌리)가 ‘EUNOIA’에서 학교 교실과 체육관으로 장소를 옮긴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식 하이틴은 2020년대 K팝의 핵심 트렌드로 등극했다.

 

 

 

 

tripleS (트리플에스)가 구축하는 한국식 하이틴, 그리고 사실주의 
 


작년 10월 K팝에 등장한 tripleS (트리플에스)도 이러한 한국식 하이틴의 기조를 잇는 그룹이다. 첫 유닛 Acid Angels from Asia가 발표했던 ‘Generation’의 뮤직비디오는 서울 지하철 5호선이나 도시 길거리 등 한국인이라면 주변에서 익숙히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고, 첫 완전체 곡인 ‘Rising’에서도 마을버스와 편의점, 아파트 등 친숙한 장소를 함께 볼 수 있었다. 5월 발표한 두 번째 유닛 +(KR)ystal Eyes의 ‘Cherry Talk’이나 ‘Touch’에서도 서예학원이나 학교 등 유사한 이미지를 반복 활용했다.


세 번째로 활동하게 된 8인 유닛 LOVElution이 발표한 타이틀곡 ‘Girls’ Capitalism’은 티저 영상부터 충격이었다. 사진관을 배경으로 멤버들이 본격 등장하기에 앞서 걸스카우트 대원과 학생 밴드, 태권도 학원 아이들의 단체 사진 촬영을 보여줬고, 이를 통해 일상적이고 다분히 ‘한국적인’ 소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흔히 걸그룹의 뮤직비디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여기에서 tripleS (트리플에스)를 단순히 “한국적 하이틴”으로 담을 수 없는 이유가 나타난다. 한국적 요소와 10대 중후반 또래 문화를 결합했다는 구조 자체는 동일하나,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현실성을 강화하는 요소는 뮤직비디오에서 공통적으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디지털 기기와 애플리케이션이다. ‘Generation’에서 멤버들은 틱톡(TikTok) 앱으로 안무를 촬영하고 인스타그램 라이브 기능으로 사람들과 소통한다. 컴퓨터로 함께 영상을 시청하는 ‘Rising’,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우정을 공유하는 ‘Cherry Talk’도 마찬가지다. 현재 10대 또래 문화를 대거 반영하면서 묘사에 사실성을 높인다.

 


즉 카메라에 담긴 세계와 실제 사이 분명한 연결점이 존재한다. NewJeans의 ‘Ditto’에서 그룹 멤버들은 시청자의 추억을 자극하는 일종의 도구였고, Billlie (빌리)의 ‘EUNOIA’에서 학교라는 공간은 사실 외피만 달라졌을 뿐 본래의 세계관을 그대로 담고 있다. STAYC (스테이씨)의 ‘Bubble’도 초반부 기숙사 장면을 지나면 장소는 가상의 놀이공원으로 변한다. 이렇듯 다른 그룹들이 보여주는 세계가 현실과 어느정도 거리감이 있는 반면 tripleS (트리플에스)는 정말로 지금 바로 옆집 문을 두드리면 나올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이를 강화하는 또 하나의 차이점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다. 대부분의 그룹이 스포트라이트를 그룹 멤버들에게 비추면서 타인을 일종의 배경에 깔리는 소품으로 사용한 것과 달리 tripleS (트리플에스) 뮤직비디오에서 일반 시민은 종종 그룹의 세계를 침범한다. ‘Generation’에서 네 멤버는 지하철 관리인과 추격전을 펼치고, 지나가는 행인으로 인해 영상 촬영 중단을 겪기도 하며, 직장인들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서 그들을 배려하며 소심하게 춤을 춘다. ‘Cherry Talk’은 더 나아가 멤버 윤서연의 남동생이나 김수민의 서예학원 원장을 단독으로 카메라에 잡기도 한다. 즉 tripleS (트리플에스)의 세계에서 일반인은 마치 게임 속 지나가는 NPC, 멤버들을 띄워주는 반사판이 아니라 분명 “살아 숨 쉬는” 존재다.

 


‘Girls’ Capitalism’의 뮤직비디오는 그룹의 정체성이 K-하이틴보다 “사실주의”에 가깝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다. 시각적인 면에서 멤버들의 이모(Emo)/고스(Goth) 패션, 푸른색 화장실과 미국식 인테리어에 가까운 식당 등은 앞선 뮤직비디오가 지향했던 바와는 사뭇 다르다. 도입부 사진관 등 한국적인 요소 못지않게 서구적인 이미지가 전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핵심은 표현 방식이 아니라 정서에 있다. “Rules for Mad Money Club”이라는 영상의 슬로건은 10대라면 한 번은 할 법한 돈에 대한 고민과 최근 한국에서 유행했던 ‘무지출 챌린지’ 또는 채팅 애플리케이션 속 ‘거지방’ 등의 문화를 반영한다. 가사로 시야를 넓히면 이러한 동시대성은 더욱 선명해진다. “귀여운 건 이제 지루해”, “예쁜 건 다 나의 소유”, “거울 속에 나를 더 사랑해 줄 거야” 등의 문장은 인스타그램 피드에 등장할 만한 엉성한 자기개발 명언처럼 유치하지만,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콘셉트를 생각하면 오히려 고증인 셈이다. 과거 TWICE (트와이스)도 ‘CHEER UP’이나 ‘TT’, ‘LIKEY’ 등에서 친근한 가사를 선보였으나 판타지적 콘셉트로 인해 무게추가 화자의 입보다 시청자의 귀와 눈에 쏠려 있었다면, tripleS (트리플에스)는 콘셉트와 텍스트 사이의 합일을 이뤄 간극을 봉합한다.

 


타자화되는 방식에서도 분명한 온도차가 있다.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에 태생적으로 내재된 관음적 시선은 K팝 걸그룹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동일했고, 이에 따라 주체성을 내세운다 한들 그룹 멤버들은 어쩔 수 없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반듯하고 모나지 않은 형태로 렌즈 속에 포착되면서 실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상상이 실제로 구현된 결과물로 자리하는 것이다.

 


화려한 비주얼과 미디어가 비추는 전형적인 소녀 이미지에 기반하기에 tripleS (트리플에스) 또한 대상이 되는 처지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뮤직비디오 내부에 추가된 시선 구도 하나가 차별화를 이뤄낸다. ‘Rising’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멤버들에게 향하는 교복을 입은 일반 학생들의 눈길, ‘Girls’ Capitalism’ 속 식당에서 즐거워하는 그룹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다른 손님의 표정 등은 tripleS (트리플에스)를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어딘가 이상한 이들로 인식되게 한다. 캐릭터에 생동감과 동질감을 부여하는 장치다.

 


tripleS (트리플에스)의 이런 ‘다르지 않음’은 그룹이 보여주는 결점의 무게감을 대폭 낮춘다. 그룹의 지향점은 완벽하게 세공된 전문가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길을 걷다 보면 마주칠 수 있을 것만 같은 일반 학생, 혹은 ‘Rising’에서 보여주듯 미래를 위해 열심히 연습하는 댄스 동아리 팀에 가깝다. 이러한 묘사는 뛰어난 퍼포먼스를 그룹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 두되, 동시에 무대 위 그들의 모습이 불완전하다 해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어린 나이임에도 뛰어난 실력이 요구되는 아이돌의 근본 개념에 대해 재고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아이돌 개념 해체 작업


‘우상’이라는 의미처럼 아이돌은 10대 대중이 “닮고 싶은” 이미지를 몸소 제시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비일상적이고 환상의 세계에 가까운 이미지를 내세웠고, 그 결과로 이따금 복잡한 세계관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걸크러시”에 뿌리를 두어 ITZY (있지)의 데뷔 이후 본격적인 키워드로 부상한 4세대 그룹의 주체성 테마는 신비로운 비주얼을 제시하고 일종의 영웅적 인물로 멤버들을 치켜세운다는 점에서 일명 낭만주의로 칭할 수 있을 법하다. 삭막한 디지털 세계에서 전투를 벌이는 aespa,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NMIXX를 상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IVE (아이브)의 ‘LOVE DIVE’다. 분홍빛이 가득 맴도는 신비로운 세계에서 멤버들은 신화 속 존재인 큐피드와 같은 존재가 되어 춤을 춘다. 현실과의 접점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다.

 


tripleS (트리플에스) 모드하우스의 대표 정병기가 과거 제작한 이달의 소녀와 비교했을 때 더 흥미로워진다. 이달의 소녀가 멤버별로 상징 색깔과 과일, 동물까지 세세하게 지정된 심오한 세계관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Butterfly’에서는 세계 각지의 유색인종 여성을 담아 무국적성의 특성을 강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노래의 메시지 또한 “한 마리의 나비처럼 날자”며 앞으로 나아갈 것을 격려했다. tripleS (트리플에스)는 완벽한 안티테제다. 그들은 닮고 싶은 인물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닮아있다.

 


물론 한계는 존재한다. 노래와 가사, 이미지가 기본적으로 또래가 아닌 어른의 손길이 닿아 만들어짐에 따라 그룹을 구성하는 어린 소녀들과 완전히 동일할 수 없다. 아이돌로 소비되기 위해 보기 좋은 특성만을 추출하여 재가공할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영상에서 나타나는 10대의 이미지는 대중에게 통용되는 수준에서 다듬어지고 끼워 맞춰진 결과물이다. 
 

 

그러나 tripleS (트리플에스)의 이런 사실주의적 접근 태도는 아이돌 문화와 실제 청소년의 문화 사이 공고한 장벽을 깰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품게 한다. 과연 K팝이 실제와 허상 간의 거리를 얼마나 좁힐 수 있을까. 설령 불가능할지라도 일단 그 목적지를 향해 tripleS (트리플에스)가 한 발짝 먼저 다가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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