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과 ‘댄스’의 조합은 대한민국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여성과 춤. 신체의 많은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춤을 춘다는 것은 그 예술적 가치보단 일차적인 유흥에 한정돼 해석되는 경우가 많았다. 시쳇말로 ‘딴따라’라는 표현이 이를 잘 대변한다. 더하여 여성이 몸을 흔든다는 것은 남성에 비해 더 가혹한 외부 시선이 따라붙고는 했다. 이제는 소환하는 것조차 고루해진 유교주의 덕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음악사에 있어 ‘여성 댄스 뮤지션’은 유의미한 함의를 만들어 냈다. 댄스 에서만큼은 여성 음악가의 파워가 더 강했다. 댄스 음악 장르가 잉태된 1960년대 이금희, 김추자 등의 원로 뮤지션이나 조금 더 시기를 앞당겨 인순이, 김완선, 나미 나아가 1990~2000년대의 엄정화, 이효리 등은 댄스가 여성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일조한 대표적인 아티스트다. 소방차나 박남정, 박진영 등의 남성 댄스 뮤지션이 있긴 했지만 댄스 음악 계보를 이어 나갈 정도의 꾸준한 세력을 만들진 못했다. 외설스럽다는 등의 이유로 여성 댄스를 둘러싼 크고 작은 잡음은 계속 존재했다. 그래도 이 구역에서 여성 뮤지션은 굽히지 않고 제 길을 냈다.
시선을 ‘여성 댄서’로 옮겨 왔을 때 상황은 달라진다. 댄서가 무대 위의 개별 존재가 아닌 뮤지션 뒤의 ‘백댄서’로 호칭되는 게 더 익숙했던 지난날, 여성 댄서는 그 자체로 오롯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여러 배경들로 이들의 춤을 섹슈얼적으로만 바라보는 경우나 댄서 개인이 주목받을 제대로 된 기회가 많지 않기도 했다. 홍영주, 배윤정 등의 안무가가 어느 정도 대중 인지도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한 여성 댄서의 이야기가 제대로, 한 번에, 확실히 조명받은 건 2021년부터다.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던 < 스트릿 우먼 파이터 > 흥행이다.
"2021년 여름, 춤으로 패는 여자들이 온다! "여자들의 춤 싸움
프로그램 홍보 문구처럼 < 스트릿 우먼 파이터 >는 춤으로 팼다. 약자 지목 배틀, 계급 미션, 메가 크루 미션 등 댄스 크루의 우열을 가르는 서바이벌 전이 진행되는 와중 재고 따지는 것 없이 직설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드높이고, 시원하게 다른 댄서와 ‘파이트’ 하는 모습은 시청자에게 굉장한 쾌감을 안겼다. 배배 꼬인 한때는 동료였던, 사제 간이었던 댄서 사이의 마찰 또한 방송에 색다른 서사를 부여했다. 드라마. 드라마가 있었다. 계급장 떼고 멋진 퍼포먼스로 최선을 다해 춤 승부를 버리다가 승패가 나면 서로에게 담백한 리스펙 사인을 보내고, 감정의 잔재는 춤과 함께 털어버렸다.
더군다나 < 스트릿 우먼 파이터 >는 ‘여적여’, ‘캣파이트’에 초점 맞추지 않았다. 방송이 집중한 것은 댄서들의 진정성 있는 승부였고 바로 이점이 싸움 너머의 감동을 전했다. 여자들의 춤 싸움은 화끈했고 깔끔했으며 무엇보다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왁킹, 아이솔레이션, 코레오그래피, 그리고 팝핑 등의 단어 옆에 여성 댄서들의 이름이 따라붙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2021년을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하는 ‘스우파’가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려져 있던 여성 댄서의 매력을 양지로 끌어올렸다는 새로운 영역 발굴의 측면 말고도 < 스트릿 우먼 파이터 >가 이 정도로 큰 인기를 양산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방송이 만든 ‘챌린지’ 열풍이 한몫한다. ‘스우파’는 이미 많은 아이돌, 배우, 심지어는 각종 기업체 등이 마케팅 요소로 사용하고 있던 챌린지 만들기의 허들이 낮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각 댄서가 춤을 만드는 과정과 경합을 통해 한 노래의 대표 댄스가 선정되는 순간, 뮤직비디오 촬영 모습 등이 모두 생생하게 방송을 탔다. 시청자는 마치 스스로가 그 음악의 퍼포먼스를 구성한 것 마냥 노래 위의 춤이 짜이는 것을 본다. 몰입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David Guetta의 ‘Hey Mama (Feat. Nicki Minaj & Bebe Rexha & Afrojack)’가 시작이었다. < 스트릿 우먼 파이터 > 계급 미션에 등장한 이 곡은 ‘스우파’ 열풍을 실시간으로 증명했다. 온 거리에 노래가 울려 퍼졌고 많은 사람이 이 춤을 췄다. 기습적인 킥 드럼 소리로 문을 열며 ‘Be my woman, girl, I'mma Be your man’이란 가사를 주술처럼 읊조리고 강렬한 EDM 사운드가 교차하며 파워풀한 보컬이 얹힌다. 프랑스 출신의 대표적인 EDM 아티스트 David Guetta의 2015년 히트곡이기도 한 노래는 2021년 방송에 쓰이며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미 발매 년도에 빌보드 싱글차트 8위까지 오를 정도로 널리 알려진 곡이었는데 국내에 대중화된 건 ‘스우파’ 명백히 스우파 영향이었다.
바로 다음 해 < 스트릿 맨 파이터 >는 ‘새삥 (Prod. by ZICO) (Feat. 호미들)’으로 요약된다. 이때부터 기존 곡이 아닌 방송을 위해 프로듀서와 뮤지션이 함께 만든 음악이 제시되기 시작한다. 이미 ‘아무노래’ 챌린지로 대중적 성공을 이끈 전례가 있던 지코 (ZICO)가 곡을 썼고 ‘사이렌’으로 가난에서 성공한 삶으로 허슬 라이프를 보여주며 많은 사랑을 받은 래퍼 그룹 호미들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나는 새삥 / 모든 게 다 새삥 / 보세 옷을 걸쳐도 / 브랜드 묻는 DM이 와’하는 재기발랄하고 플렉스 넘치는 가사 위에 시계를 만지고 옷을 펄럭이는 특징적인 댄스가 덧붙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현재 방영 중인 < 스트릿 우먼 파이트 2 >에서는 ‘smoke (Prod. by Dynamic duo & Padi)’가 인기몰이 중이다. 도입부 라이터를 켜는 사운드에 맞춰 제스처를 취하고 ‘나는 달리거나 넘어지거나 둘 중에 하나야 브레이크 없는 bike’ 하는 가사에 따라 매끈하게 강약 조절을 하는 댄스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노래다. 9월 5일 발매된 곡은 9월 말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유튜브 인기 급상승 음악 상위권에 올라 있으며 곡의 메인 댄서를 가리는 대결 영상은 313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최종 선발된 댄스로 리더 계급진이 함께 찍은 뮤직비디오 영상은 공개 2주 만에 609만 조회수를 달성하고 있으니 가히 ‘smoke (Prod. by Dynamic duo & Padi)’가 닿은 모든 콘텐츠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2021년 < 스트릿 우먼 파이터 >로 문을 연 여성 댄서의 세계가 이후 <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 >와 < 스트릿 맨 파이터 >로 이어지며 연달아 흥행에 성공했다. ‘스우파’가 이전 그 많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차별화를 지니고 이토록 큰 관심을 끌 수 있었던 중심에는 ‘여성’, ‘댄스’ 그리고 ‘챌린지’가 놓인다. 어떤 식으로든 가려져 있던 여성 댄서의 삶을 프로그램이 제대로 조명했고, 판 벌린 무대 위에서 여성 댄서가 지지 않고 빛났다. 이들의 춤을 향한 열정이 대중을 감화했다. 대중은 응답과 호응을 챌린지로 완성했다. 직접 춤을 추는 것. 함께 음악과 춤을 즐기는 것. 2023년 대한민국이 또 한번 춤추는 여성들로 들썩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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