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멋진 무대로 가득 찼던 <2022 MAMA AWARDS>에서 최고의 감동적 순간을 뽑으라면 역시 카라(KARA)의 컴백이다. 무대 시작 전 카라의 지난날을 정리한 VCR, 문이 열리면서 짧게 흘러나오는 ‘미스터’의 후렴, “2010”에서 “2022”가 된 ‘루팡 (Lupin)’ 인트로 속 니콜의 랩 등 모든 것이 심장을 뛰게 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도 이 한 문장을 넘어서진 못한다. “여러분 너무 보고싶었습니다. 모두들 준비됐죠?” 찬란한 영광의 순간만큼이나 많은 아픔을 겪었던 그룹이기에 큰 소리로 외치는 인사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뒤이어 선보인 15주년 기념 컴백 싱글 ‘WHEN I MOVE’의 퍼포먼스는 7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절도 있는 안무와 시작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라이브 보컬, 우리가 사랑했던 풋풋한 카라(KARA)가 어느덧 관록의 베테랑이 되어 돌아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세대를 아우르는 K팝의 힘을 상징하는 무대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새로운 그룹과 눈 감았다 뜨면 바뀌는 지형도 등의 영향으로 K팝 산업의 시곗바늘은 그 어떤 분야보다 빠르게 돌아간다. 표준 계약기간 7년을 채우지 못한 채 흩어지는 팀도 대다수고, 또래 친구들이 아닌 관객 앞으로 불려 나온 10대 중후반 어린 청소년들은 사회 초년생에 불과한 20대 중반의 나이만 되더라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서 (암묵적으로) 밀려나게 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업계인과 대중이 모두 알고 있던 라이프 사이클이었다.
돌아본 2023년은 늘 정해진 대로 돌아가던 시나리오가 조금씩 개정되는 해였다. 카라(KARA)는 연말 컴백으로 시작해 일본 활동까지 성황리에 끝마쳤고, 허영지는 그룹의 막내로서 올해 9월 첫 솔로 작품인 [Toi Toi Toi]를 선보였다. 스물아홉부터 서른다섯까지, 요즘 나오는 아이돌 그룹의 평균 연령폭과 열 살 넘게 차이가 나는 팀의 적극적인 활동은 빠르게 소모되던 걸그룹의 수명이 충분히 더 길어질 수 있음을 확실하게 알렸다.
돌아온 “여전히 젊은” 선배들
보이그룹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신생 팀이 한동안 멀어졌던 대중과의 거리를 좁혔던 올해의 흐름에 선배 그룹까지 가세하며 2023년 K팝을 박진감 넘치게 했다. 2022년 [FOREVER 1 – The 7th Album]을 발표하며 15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했던 소녀시대(GIRLS’ GENERATION)의 뒤를 이어 올해 6월에는 같은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샤이니(SHINee)가 [HARD - The 8th Album]로 2년 만에 새 정규 앨범을 공개한 것이 대표적이다.
눈여겨볼 점이라면 타이틀곡 ‘HARD’가 표방하는 테마다. 소녀시대(GIRLS’ GENERATION)의 축포가 여태까지의 행복했던 시간을 갈무리하며 영원을 약속하는 느낌이었다면 샤이니(SHINee)는 계속해서 녹슬지 않는 의지를 내세웠다. “We go/We go/We go hard”로 대변되는 가사는 과거에 대한 정겨운 시선이 개입하기에 아직 자신들은 젊다는 듯이 전진의 포부만을 표현한다. 태도 면에서는 리듬에 몸을 맡긴 ‘지금’에 집중하는 카라(KARA)의 ‘WHEN I MOVE’와 오히려 비슷하다.
2010년대 초중반 함께 전성기를 보냈던 또 다른 그룹의 복귀도 K팝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싱글 ‘CLOCK’을 2019년 발표한 이후 한동안 그룹 활동이 없었던 인피니트(Infinite)가 올해 7월 31일, 일곱 번째 미니 앨범 [13egin]을 발표하며 4년이 넘는 공백기에 마침표를 찍은 것. 프로듀서 Sweetune(스윗튠)이 제작한 ‘내꺼하자’, ‘추격자’ 등 대표곡의 속도감 넘치는 팝 사운드와는 차별화되는 그루비한 알앤비 트랙 ‘New Emotions’를 타이틀곡으로 선보인 것은 익숙한 길이 있음에도 모험을 추구하겠다는 것을 넌지시 알린다.
이들의 컴백이 더욱 중요한 이슈인 것은 소속사와의 원만한 관계 때문이다. 본래 울림 엔터테인먼트의 소속 그룹이던 인피니트(Infinite)는 2022년 10월 계약 만료 이후 [13egin]의 준비를 위해 멤버 김성규를 주축으로 새로운 회사에 모이게 되었다. 아이돌 그룹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름의 유지 문제가 걸려 있었으나, 울림 엔터테인먼트의 이중엽 대표가 기꺼이 상표권을 양도하면서 인피니트(Infinite)의 역사를 끝내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다. 과거 회사와의 분쟁으로 대중에게 익숙했던 이름을 가져가지 못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했던 여러 그룹의 사례를 생각하면, 이번 인피니트(Infinite)의 활동은 K팝이 그저 손익 계산 이상의 네트워크를 꾸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향수 뿌리지마’, ‘긴 생머리 그녀 (Miss Right)’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보이그룹 틴 탑(Teen Top)도 7월 미니 앨범 [4SHO]를 공개했다. 상반기 예능 프로그램 < 놀면 뭐하니? >에 출연하며 데뷔 초반의 추억을 되살리며 대중적인 호응을 받은 덕에 3년 만에 개시하는 활동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다. 과정 중에 멤버 변동 등의 사건이 있었지만 성황리에 여러 공연에 참여하며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2023년을 선물했다.
K팝의 복고적 시선과 리메이크 열풍
4세대, 심지어 5세대 아이돌이라는 타이틀까지 등장하는 지금 시점에서 엄밀히 말해 과거의 그룹이 된 아이돌의 부활은 조금은 신기하게 느껴진다. 2020년대 K팝이 2010년대의 유산을 다시 들추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몇 가지 짚어봤다.
첫 번째로 각종 콘텐츠 속 복고의 유행을 들 수 있겠다. 각종 방송사에서 1990년대 방송 프로그램의 무대를 인터넷으로 송출하여 큰 반향을 끌어낸 것을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콘텐츠가 K팝의 태동 이전 1990년대 가요를 주 소재로 삼았다면, SBS < 문명특급 >은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과 “컴눈명(컴백해도 눈감아 줄 명곡)” 시리즈를 기획하며 당시 크게 빛을 보지 못한 2010년대 전후 K팝을 다시 소환했다. 이른바 “고인물” 문화로 불리는 인터넷 마니아들의 의견을 주류 방송사에서 채택한 것이다. 그 여파로 현재 각종 소규모 채널이 2010년대 K팝 관련 콘텐츠를 대거 제작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단순히 음악 외에도 시대 복각이 트렌드가 되었다. 유튜브 <사내뷰공업> 채널의 “다큐 황은정” 시리즈가 대표적으로,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전 피쳐폰으로 사진을 찍고 인터넷 소설을 읽는 2010년대 고등학생의 생활상을 놀라운 재현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삽입된 음악은 당연히 시대상에 맞게 miss A(미쓰에이)의 ‘Bad Girl Good Girl’ 같은 당대 히트곡이 채웠다. 여전히 활발한 디지털 활용 능력을 보여주는 현재 20~30대가 가진 추억이 흥행 공식으로 등극한 것이다.
부활의 근거를 K팝 내부에 초점을 맞춘다면 각종 리메이크를 빼놓을 수가 없다. aespa(에스파)가 2021년 12월 SM 엔터테인먼트의 선배 그룹 S.E.S.(에스이에스)의 대표곡을 재해석한 ‘Dreams Come True’, 그리고 H.O.T.(에이치오티)의 ‘Candy’를 리메이크한 NCT DREAM(엔시티 드림)은 음원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시대를 넘는 곡의 생명력을 증명했다. 자체적인 레퍼토리의 복습을 통해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증명하려는 시도이면서도 동시에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어느덧 오래 쌓인 K팝의 역사를 실감할 수 있는 기획이었다.
숨은 명곡 발굴 작업도 이뤄졌다. NMIXX(엔믹스)는 ‘여름방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22년 7월 ‘Kiss’를 발표하여 선배 걸그룹 레인보우(Rainbow)의 노래를 새롭게 조명했다. 특히 ‘Kiss’는 레인보우(Rainbow)의 데뷔 미니 앨범 [Gossip Girl (EP)]에 수록되었지만 타이틀곡 ‘Gossip Girl’과 후속곡 ‘Not Your Girl’에 밀려 별다른 방송 홍보는 하지 못한 곡이다. 그러나 여러 오프라인 행사에서 선보이며 K팝 마니아 사이에서 숨겨진 명곡으로 종종 언급되었던 트랙으로, 원작자 모노트리(MonoTree)의 편곡을 가세한 리메이크는 K팝 음악의 재발굴이 기존의 하향식 구조를 탈피한 상향식으로도 이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결론을 지어본다면, 가장 먼저 한국 문화계 전반에 감도는 복고적 시선을 K팝 음악 산업이 차용한 것을 재발굴의 1차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음악 자체를 리메이크하는 보다 적극적인 재현이 힘을 더 실어준 것이다. 모방과 재해석의 끝에 원본을 다시 불러 세우는, 결코 어색하지 않은 전개다.
사실은 늘 곁에 있었던 아이돌
키워드를 ‘귀환’으로 칭하게 되지만, 엄밀히 따졌을 때 ‘돌아왔다’는 표현은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사실 대다수 사람들의 시선 밖으로 밀려났을 수는 있어도, 늘 꾸준히 연예계에서 노력을 지속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틴 탑(Teen Top)은 멤버들의 군복무로 인해 활동이 불가피하게 중단되기 전인 2021년까지 계속해서 미디어에 모습을 비췄고, 샤이니(SHINee)는 그룹 커리어 외에도 키(KEY)나 태민(TAEMIN) 등 멤버 전원이 솔로 음반을 발매하여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활동이 사실상 중단되었던 카라(KARA)의 경우도 막내 허영지가 각종 무대에서 꾸준히 그룹의 음악을 선보이며 카라(KARA)의 이름이 대중에게 잊히지 않도록 부단히 애썼다. 카라(KARA)의 재결합에 있어서 허영지의 존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이유다.
전세계적으로 복고 유행이 가시지 않고 계속 맴도는 상황이지만 K팝이 과거의 유산을 바라보고 초대하는 방식은 단순한 회상 이상의 의의를 지닌다. 소모적으로 새 음악과 새로운 그룹만을 찾던 가속화 시장의 형태에서 벗어나 여태까지 걸어온 자취를 여유롭게 감상하고 역사성을 탐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90년대 중후반 이후로 시작한 K팝의 이야기는 이제 30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 K팝의 무한한 흡수력이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의 높은 지위에 오르는 계단을 마련했다면, 이제는 본질적인 정체성의 고찰과 건강한 소비 패턴으로 훗날까지 이어질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더 많은 질문과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2023년 한 해 동안 우리가 목격한 수많은 복귀와 복각이 충분한 첫 단추가 되리라 감히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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